감염의 가능성을 생각함
- 시인, '시선-되기'에서 '사건-되기'로 가는 길
김소연
"누나" 하고 심보선은 구글토크로 말을 건다. 어떻게 지낸다는 얘기가 아닌, 어떤 생각을 하고 지낸다는 안부를 건넨다. "어떻게 생각해?" 하고 그는 묻곤 한다.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에 대해 누군가가 지니는 생각을 그는 늘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그는 길 가다 만난 길고양이나 가로수에게도 나뭇가지를 옮겨다니는 새에게도, 함께 지내고 있는 강아지 라마에게도 "어떻게 생각해?"하고 언제나 물을 사람이다. 그와 제법 많은 얘기를 나눠온 나는 거의 모든 세세한 세상 일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해온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의견을 들어온 것 같다. 그의 친구라면 누구든 나처럼 그에게 머릿속에 비밀 없이 남김없이 거의 모든 생각을 털어놓지 않았을까 싶다. 친구들의 비밀한 고백에 대한 수집가 심보선은 그의 비밀을 시에 담는다. 그는 비밀을 사랑하는 만큼 비밀을 고백하는 걸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그의 시엔 비밀이 없다. 그에게 시는 비밀을 나누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가 나누고자 하는 비밀이 깊고 큰 것일수록 그의 시는 친절해진다. 평이한 낱말 하나하나가 모여서 비밀을 관통해간다. 능청스러운 말투 하나하나가 모여서 고백을 점묘해간다. 그의 시는 그래서 난해하지 않은 채로 깊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면, 그의 언어의 무늬에 홀려 그의 비밀을 간과할 일은 없어진다. 단지, 그의 시를 읽고서 비밀을 엿본 자처럼 뜨거워지곤 한다. 그의 빼어난 어떤 시에 우리가 질투를 느낀다면, 그의 언어를 향해서가 아니라 그의 영혼에 향해서일 거다. 누군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심보선의 시를 읽으면 이런 친구를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의 영혼을 곁에 둔 한 사람인 나는 심보선이 곁에 있다는 것에 대해 친구 한 명을 곁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와 우정을 나누는 일은 이 세계의 비밀로 짠 벨벳의 결을 하나하나 쓰다듬는 손, 혹은 거미줄처럼 가녀린 비밀의 망들을 조심스럽게 풀어헤치는 손과 조심스런 악수를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비밀을 두 손에 담뿍 담은 아이의 흙 묻은 손이자, 비밀의 화덕에 데인 진물이 흐르는 손을 기꺼이 나누는 일이라 생각한다.
심보선의 시가 세상에 제대로 알려진 건 그의 첫 시집이 나온 다음이었다. 천천히 퍼져나갔고 사랑받기 시작했다. 심보선의 시는 평론가들이 환호하며 가져가 자기 밥숟갈을 얹어놓고 선점하며 그 시세계가 자신의 밥상인양 자처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주목받았다'는 말과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그의 시세계는 동료 시인들과 독자들에게 그저 조용히 사랑받고 음미됐다. 그의 시는 이상한 가역성을 지닌 채로, 읽는 사람을 바꾸어놓았다. 그의 시집을 읽으면 시에 대해 말하고 싶은 욕망보다 시를 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페이지 귀퉁이를 접고 접으며, 조용히 시집을 내려놓고 내 얘기를 하고 싶게 했다. 어쩌면 그래서 시에 대해 말하고 싶은 사람보다 시를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 사랑받았는지 모르겠다. 굳센 선동의 힘으로, 혹은 세심한 서정의 힘으로, 혹은 몸과 삶을 내던진 힘으로, 혹은 세련된 메타포의 힘으로, 혹은 넘치는 낭만과 광기와 전위와 실험정신으로 시는 우리를 바꿔놓곤 했다. 1) 이 나열들에 그의 시는 해당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를 바꿔놓을 수 있었을까. 이 이상한 가역성엔 어떤 인플루엔자가 담겨 있었을까. 이 이상한 가역성은 우리를 어떤 식으로 감염시켰던 걸까.
사소한 감염 하나, 이상한 금기어들
그의 시는 일차적으로 우릴 당혹스럽게 했다. '사랑, 이별, 추억, 미련, 고독, 욕망, 수치, 체념, 불안, 전락, 진리, 혁명, 절망, 환멸, 침묵, 인생, 상실, 우울, 비극, 폐허, 존재, 슬픔, 운명, 번민, 심연' 같은 낡아빠진 시어들을 시에 장착해서 중심축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시를 쓴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금기어'로 낙인찍힌 낱말들. 그는 이런 금기어들을 데려다가 마치 그간의 홀대함에 대해 사과문을 작성하는 사람처럼, 애절하게 그 낱말들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 버려진 낱말들을 자기 것으로 조용히 가져갔다. 김수영은 생애를 통틀어 '서러움'이라는 낱말을 155번을 썼다고 한다. 김수영 이후, '서러움'이라는 말을 시에다 쓰면 어딘가 김수영스러워진다. 누군가를 닮는 일을 시인들은 꺼려 한다. 그게 김수영일지라도. 그래서 우리는 '서러움' 때문에 시를 쓰지만 '서러움'이라는 낱말을 피해서 시를 써야 한다. 그런 식으로 어떤 시어들은 한 시인의 독점어가 되곤 한다. 그러나 심보선은 자신이 가져다 쓴 이 금기어들을 자신만의 독점어로 취하지 않았다. 단지, 심보선 덕분에 이 낱말들은 금기로부터 해제됐다. 실은 시인들이 너무도 흠모하고 탐했던 저 낱말들을 불경스럽게도 심보선은 금기의 장소에서 훔쳐와 우리에게 건넨 셈이 됐다.
어떤 금기 하나를 깨기 위해서 시인은 때로 필사적이 된다. 그것이 금기였음을 알고 있고 그 때문에 받은 억압과 싸운 흔적이 고스란히 시의 풍채엔 담겨 있기 마련이다. 싸운 자가 풍기는 포스가 고스란히 시인의 카리스마가 되곤 하는 것을 우리는 김수영을 비롯해서 많은 위대한 시인들에게 발견하곤 했다. 그에 비한다면 심보선에겐 그런 싸움의 흔적이 없다. 그것이 금기였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아이처럼 그는 금기를 깼다. 금기를 깬 자의 카리스마 대신에 아이와도 같은 천진함이 그의 시의 풍채가 되는 이유가 아마도 이 때문이지 싶다.
사소하지 않은 감염 하나, 자의식의 발생 장소
자기정체성. 이건 흔히 확립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기정체성이 확립된 자가 첫번째 하는 일은 타자의 시선에 비친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서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과 타자와 세계를 보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덜 불안하게 둘러볼 수 있다. 살아가는 일의 흔들림으로부터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된다. 심보선은 이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중심을 거절한다. 2) 이 거절은 자기의 중심이 어떤 감염에 의해 겪게 될 변화를 위해서 '보류된 거절'이다. 타자에게 기꺼이 감염되기를, 세계에게 기꺼이 감염되기를 갈망하기 때문에 행하는 거절이다. 그의 갈망은 그가 어린아이처럼 멍때리는 시간에 찾아온다. 갈망이 가고자 하는 장소로 호기심 많은 소년처럼 따라간다. 그런 후, 사려 깊은 청년처럼 갈망의 행위를 조망한다. 이것이 나로부터 나온 것이냐. 타자로부터 나온 것이냐. 혹은 세계로부터 나온 것이냐. 고민에 빠진다. "제삼자"3)가 개입된 사건을 관찰하듯, 갈망이 일으키는 작용들을 살펴본다. 노련한 학자처럼. 그리고 비로소 기록한다. 갈망이 어떤 또다른 갈망과 연결되었는가를. 사랑의 불가역한 힘에 사로잡힌 심장을 손바닥으로 지긋이 눌러 다독이는 연인의 손길로. 그렇게 그는 보류된 자기중심의 장소에서 겪는 다사다난한 사건을 통과한다. 그의 시집 한 권이 그렇기도 하지만, 그의 시 한 편 한 편이 이 사건을 통과하는 과정자체의 기록이다. 『눈 앞에 없는 사람』에는 이러한 진화과정을 자세히 그려낸 시편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심보선의 시의 장소는 자의식을 솜씨좋게 부려놓는 장소가 아니라, 자의식이 비로소 발생되는 경이의 장소가 된다.4)
첫번째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에서 그는 언제나 관찰자였다. 두리번거리고 중얼거리는 독특한 카메라의 시선으로, 자신을 포함하여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시에 담았다. 이 독특한 그의 시선에 대해서 나는 언젠가 '1.5인칭 시점'이라고 호명한 적이 있다. 1인칭과 2인칭의 그 사이, 1인칭보다는 거리를 두었지만, 2인칭은 아닌. 그래서 모든 고백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어떤 뜨거운 고백도 서늘함이 유지되는 적정 위치. 자기고백을 통해 자기고백조차 낯설게 치환될 수 있는 딴 사람의 위치. 그렇게 심보선은 새로운 시선이 되는 일을 첫번째 시집을 통해 즐겼다. 그러나 그 이후, 그는 조금씩 '시선'이 아닌 '사건'으로 딴 사람이 되어갔다. 그는 언제나 좋은 시가 가능할 문학적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에 있었다. 행운처럼. 어째서 그런 행운이 그에게 가능했을까. 그는 언제나 문학적 사건을 발명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런 경이가 가능하다. 그는 사소한 발견 하나에서 하나의 발명을 끌어낸다. 언어의 힘으로가 아니라, 영혼의 힘으로. 다른 시인들이 메타포를 통해 언어의 연금술을 구사할 때, 그는 언어에 기대지 않고 영혼에 기대어 연금술을 구사한다.
심보선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어떤 특별한 문학적 사건은 '발생되는' 게 아니라 '발명하는' 것이란 사실. 심보선의 시집이 우리에게 만족스러울 뿐만 아니라 아껴 읽고 싶은 귀한 시집이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로버트 카파 Robert Capa의 말을 인용한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건 그만큼 가깝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앞으로도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에 있기를. 거기서 목격자가 아니라, 사건을 발생하는 자로 존재하기를. 감염된 자가 되어 감염의 과정을 밝히고 그 가능성을 우리에게 또 건네주기를. 그리고 우리가 아직도 영혼을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말해주기를. 우리는 그의 사건을 선물처럼 소중히 받아들기를.
‘나’라는 말
심보선
나는 ‘나’라는 말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판돈인 양
나는 인생에서 ‘나’라는 말을 걸고 숱한 내기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아주 간혹 나는 ‘나’라는 말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어느 날 밤에 침대에 누워 내가 ‘나’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지평선처럼 아득하게
더 멀게는 지평선 너머 떠나온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나’라는 말이 공중보다는 밑바닥에 놓여 있을 때가 더 좋습니다.
나는 어제 산책을 나갔다가 흙 길 위에
누군가 잔가지로 써 놓은 ‘나’라는 말을 발견했습니다.
그 누군가는 그 말을 쓸 때 얼마나 고독했을까요?
그 역시 떠나온 고향을 떠올리거나
홀로 나아갈 지평선을 자라보며
땅 위에 ‘나’라고 썼던 것이겠지요.
나는 문득 그 말을 보호해주고 싶어서
자갈들을 주위에 빙 둘러 놓았습니다.
물론 하루도 채 안 돼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서
혹은 어느 무심한 발길에 의해 그 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요.
나는 ‘나’라는 말이 양각일 때보다는 음각일 때가 더 좋습니다.
사라질 운명을 감수하고 쓰인 그 말을
나는 내가 낳아 본 적도 없는 아기처럼 아끼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나’라는 말을 가장 숭배할 때는
그 말이 당신의 귀를 통과하여
당신의 온몸을 반 바퀴 돈 후
당신의 입을 통해 ‘너’라는 말로 내게 되돌려질 때입니다.
나는 압니다. 당신이 없다면,
나는 ‘나’를 말할 때마다
무(無)로 향하는 컴컴한 돌계단을 한 칸씩 밟아 내려가겠지요.
하지만 오늘 당신은 내게 미소를 지으며
‘너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지평선이나 고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나는 압니다. 나는 오늘 밤,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선물인 양
‘너는 말이야’ ‘너는 말이야’를 수없이 되뇌며
죽음보다도 평화로운 잠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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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권위들이 어떤 시를 새롭고 낯설고 옳다고 미리 챙겨 말하곤 할 때, 그것은 풍문이 되어 떠돈다. 어떤 풍문 앞에 독자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것을 소비한다. 그리고 흘려보낸다. 그게 아니라면, 새롭다는 그 시의 실체를 꼼꼼히 만나보기도 전에 그 요란한 압도에 위압감을 느낀다. 위압감을 매력으로 흡수한다. 그러나 그 흡수는 해갈보다는 갈증을 한켠에서 보태오곤 했다. 이 한켠의 갈증은 정체가 무엇일까. 과연 우리는 이 권위있는 도전들을 제대로 소화해온 걸까.
2) '자기중심'을 거절하는 사건은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많은 시인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이수명은 자의식을 진공상태로 만든다. 신해욱은 자의식의 둔갑술을, 김행숙은 자의식의 사물화를, 이장욱은 자의식과의 거리두기를 행한다.
3) 심보선의 시 <매혹>에 등장하는 인물. "사랑하는 두 사람 / 둘 사이에는 언제나 조용한 제삼자가 있다 / 그는 영묘함 속으로 둘을 이끈다 / 사랑에는 반드시 둘만의 천사가 있어야 하니까" 심보선은 '제삼자'를 '천사'로 변형하고 있는데, <인중을 긁적거리며>에서 이 천사는 다시 등장한다.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천사가 엄마 배 속의 나를 방문하고는 말했다. 네가 거쳐온 모든 전생에 들었던 / 뱃사람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일랑 잊으렴. / 너의 인생은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부터 시작해야 해. / 말을 끝낸 천사는 쉿, 하고 내 입술을 지그시 눌렀고 / 그때 내 입술 위에 인중이 생겼다."라고 탈무드를 인용했다. 그러니까, 제삼자는 천사이자 우리의 입술을 쉿! 하고 지그시 눌러 인중을 만든 인물이다. 인중(人中). 사람의 가운데. 혹은 사람과 사람의 그 가운데. 다시, "사랑하는 두 사람 / 둘 사이에는 언제나 조용한 제삼자가 있다"에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을 때 그 얼굴에는, 우리는 우리가 거쳐온 모든 전생에 들었던 뱃사람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은 잊어야 하며,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조언이, 인중처럼 새겨져 있다는 뜻이 된다.
4) 자기중심적 자의식을 시의 귀중한 자산으로 오랫동안 믿어온 우리에게, 많은 시인들(각주 2에 언급한 시인들을 비롯하여)이 보여준 자의식에 대한 다른 태도들은 색다른 세련됨을 선사하는 반면, '그래서 우리의 자의식은 어찌 됐는가' 그 안부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