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한결 같은 무능 - VOGUE 2013년 3월호.

한결 같은 무능


김소연 (시인)



  아버지의 맨 처음 직업은 농업 교사였다. 저녁이면 야상 점퍼를 입고 다방에 나가 음악을 들었다. 그는 담배 피우는 법과 당구 치는 법을 배웠다기보다는 담배를 멋있게 피우는 법과 당구를 멋있게 치는 법을 배웠다. 멋있게 하는 법을 배우면 외롭지 않았다. 쉽게 여자와 친해질 수 있었다. 어떤 여자는 다가와 인사를 건넸고 어떤 여자는 힐끗거리기만 했다. 가장 무뚝뚝했던 여자에게 궁극의 구애를 펼쳐 그는 결혼을 했다.

  두 살 터울의 두 딸은 머리를 맞대고 아버지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걸 좋아했다. 담배를 느슨하게 걸친 손가락을 좋아했다. 그런 딸들에게 아버지는 그림을 그려주었다. 정원과 뾰족 지붕을 그렸다. 딸들은 연못 속에 어룽거리는 잉어의 휘어진 몸체를 일필휘지로 그려내는 아버지의 손놀림을 좋아했지만, 그 풍경이 곧 우리집이 될 거라는 호언장담은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무능해서 싫어."

  무능하다는 건 사실 엄마의 견해였다. 그런 남편을 둔 것이 고달파서 어린 딸들을 앉혀놓고 엄마는 푸념했고 딸들은 엄마에게 해석된 아버지를 아버지라 믿었다. 책임감이 없는. 아버지답지 못한. 

  아버지의 두 번째 직업은 목장주인이었다. 젖소를 키웠고 우량젖소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사파리룩을 차려입고 소등을 쓰다듬는 아버지의 모습이 지방신문에 실렸다. 소풍 때나 운동회 때에는 전교생에게 우유를 나누어주려고 아버지는 트럭을 타고 나타났다. 

  목장일을 그만 두고 아버지는 서울에 입성했다. 제빵제과를 전문으로 하는 대기업에 상무이사로 입사했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챙겨오던 신제품의 빵을 시식하며 성장기를 보냈다. 빵과 과자에 수입식료품들이 부엌방에 가득해졌다.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켐벨 수프와 초콜릿과 빵과 과자들. 그것이 월급을 대신했단 사실을 자식들은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정리해고를 당했고 다시 목장을 경영하기 위해 땅을 보러 다녔다. 양어장을 만들어 뱀장어를 키웠다. 물의 온도가 16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밥도 먹지 않는다는 예민한 뱀장어를 키웠다. 엄마는 뱀장어를 요리하는 법을 연구했고 가족들에게 저녁마다 뱀장어를 구워 먹였다. 뱀장어의 배를 단숨에 가르는 기구를 발명했고 양념을 개발했다. 뱀장어는 날로 맛있어졌지만 매일 먹을 수 있을 편안한 음식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다음 관심사는 태양열이었다. 쏠라 테크의 미래에 대한 거창한 설명이 담긴 브로셔를 자식들 책가방에 넣어주며 담임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우리만큼이나 가난해 보이는 담임에게 태양열 주택을 권유할 재간이 자식들에겐 없었지만, 연탄을 갈기 위해 간밤에 자다 깰 일은 없을 거란 설명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브로셔의 문장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아버지는 태양열 판넬을 한 번도 팔지 못한 채 사업을 접었고, 이내 미국산 피자를 수입하는 일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밥 먹듯이 피자를 먹을 날이 올 거라며 TV광고부터 시작했다. 두 딸은 영화 속에서만 보았던 피자를 시식했고, 피자치즈와 도우와 토핑재료들이 가득한 냉장고를 뿌듯해했다. 피자 사업은 체인점을 모집하는 일부터 삐걱댔고 가족들이 먹어야 할 피자는 늘어만 갔다. 아버지는 여러 번의 이력서를 썼고, 이력서를 정성들여 쓰는 기간에는 가족들과 아무 말도 섞지 않았다. 글을 쓰겠다고 타자기를 장만한 큰딸에게 자신의 이력서를 대신 타이핑해달라고 부탁했던 어느 날, 다섯 페이지가 넘는 화려한 이력을 모두 타이핑한 후에 딸이 건넨 매정한 한 마디에, 그는 밥을 먹다 말고 밥그릇을 집어던졌다. 깨어진 밥그릇과 흩어져 날아간 밥알들은 남은 모든 가족의 생을 가장 신랄하게 보여준 실물과 같았다. 

  가족에게 말을 건넬 때에도 시선을 딴 곳에 두었던 그가 그렇게까지 격정적인 감정을 보여준 일은 한 번 더 있었다. 장남이 위암으로 투병하다 죽었을 때였다. 장례식 동안 그는 한결같이 담담했다. 울부짖는 친척들과 아들 친구들을 위로했다. 화장을 치르고 유골함을 안고 화장터를 나오는 큰딸에게 달려들어 유골함을 빼앗아 안고 큰 소리를 내어 울었다. 

  아버지가 선택했던 마지막 직업은 다우저(Dower)였다. 수맥을 찾아내는 수작업을 하기 위해 '엘로드'라든가 '펜듈럼' 같은 작은 도구를 들고 시범을 보이면서, 풍수와 웰빙에 대해 강조했다. 그 도구를 손에 든 이후엔 집을 자주 떠났고 철학자에 가까워져갔다.

  아버지에겐 두 개의 타이핀이 있다. 외출을 할 때면 천천히 넥타이를 맨 후에 타이핀을  꽂는다. 하나는 배재학당의, 하나는 서울대학교의 심볼이 새겨져 있다. 집 한 채도 소유하지 못했고 자식자랑도 할 게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늙어갔지만, 자신의 가장 빛나던 시절을 말해줄 단 두 개의 액세서리를 가슴에 꽂기 위해 그는 동창모임에 나갔다. 다녀와서는 '모두가 나쁜 사람이 되었다'는 말과 '누가 불쌍한 건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을 가족들에게 했고, 두 개의 타이핀을 다시 장롱 속에 소중히 보관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우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능력도 제로였지만 권위나 억압도 제로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언제나 보통의 사람이었다. 딸들에게는 이미지의 진짜를 선물해준 맨처음 남자였다. 이를테면 전나무 같은 것. 12월이 시작되면 잘 생긴 전나무를 가져와 마루 한 켠에 세워두고 자식들에게 크리스마스 장식물을 매달게 했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전구에 휩싸인 전나무의 모습은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했다. 플라스틱이 아닌, 진짜 전나무.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잠시 빛나던. 

  "도미노 게임처럼 소중한 걸 너무 가까이 두지 마라. 하나가 무너져도 연쇄적으로 무너지진 않도록 조금 멀리 두어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야."

  아버지가 해준 말 중에 큰딸이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다. 못 하나를 박아도 허술하게 박아서 무언가를 매달면 얼마 가지 못해 떨어지고 부서지게 했던 그였으므로, 현자 같은 그 말은 딸에겐 유머에 가까웠다. 그가 박았던 못처럼 헐겁게 팔십 년을 살아온 그이지만,  몸을 씻거나 옷을 챙겨입는 일에는 한결같이 야무졌다. 머리를 곱게 빗지 않고는 가족 누구와도 집안에서 마주치지 않았다. 현관에 구두도 항상 가지런히 벗어두었다. 그게 다였지만  그게 전부였던 그는 딸에게 가끔씩 말해주곤 한다.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온양 온천에 다녀왔다고. 구두에 광을 내주는 발명품을 지하철에서 샀다고. 선물이라고.


- <VOGUE>, 201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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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을 만드는 일






방금 전에 포장마차에서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들어왔다. 국수를 젓가락으로 건져올리면서 포장마차를 좋아하는 이유 같은 걸 생각해보았다. 포장마차에서 뭔가를 먹으면 주인장에게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든다. 주인장이 만들어준 음식을 대접받는 것 같은 느낌. 초대받은 느낌. 그래서 잘 먹고 일어나 나갈 때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하게 된다. 연결돼 있다는 느낌은 고맙다는 마음이 들게 해서 뭘 좀 한 것 같아진다. 그저 국수 한 그릇을 먹었어도. 고맙다는 마음이 요새는 더 자주 들었다. 그게 사실은 참 고마운 일. 다행한 일.

산문집이 나왔다. 아무리 아무리 원고를 새로 쓰고 새로 넣어도, 문장을 고치고 고쳐도 계속 허물이 보여 계속계속 고치면서 생각했다. 산문의 문장을 고치는 일은 왜 이렇게 비누를 수돗물에 씻기는 것과 같은지. 비누를 아무리 씻겨도 비눗물이 가셔지지 않듯 내 문장은 꼭 그 꼴이었다. 씻길수록 비누만 닳는 것처럼 무언가가 닳고 얇아져버린 느낌이 들었다. 멈춰야 할 때를 모른다는 점에서 아직 나는 많이 미숙하고 멀었단 생각이 들었다. 편집자는 내 원고의 허물들을 최대한 도와줬고, 간명한 태도로 의논에 가담해줬고 나를 가끔 말려줬다. 역시나 참으로 고마운 일. 

이번 산문집은 시가 결말을 대신하게 했다. 내가 좋아했던 시. 내게 영향을 주었던 시들이 결말을 대신해주었다. 나는 대신해서 그 시에게 내 생활을 고스란히 바쳤다. 받친 것 같기도 하고 바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책 뒷표지에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추천사를 한가득 담았다. 그들은 주춤거리며 추천사를 부탁하는 나에게 한결같이 흔쾌했다. 당연하다고, 기껍다고, 반갑다고 말해주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든, 나는 이들과 편대비행 (요새 드래곤 플라이트를 즐겨서 이런 표현이 절로 나온다) 을 한다고 상상하며 시를 쓴다. 임무 같은 것도 없고 적도 없는 편대비행일지 몰라도, 편대비행을 한다고 생각하면 시를 쓰는 시간에 더 큰 에너지가 생긴다. 고맙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거다. 고마움을 갚을 생각에 더 기분좋아질 때.

책을 한 권 내고 나면 나는 책에 담긴 나보다 더 큰 어른이 되고 싶어진다. 더 까다롭고 더 정확하고 더 먼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그러면서도 내 책으로부터 표표하고 싶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벌레가 벗어놓은 허물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아주 가끔 새로 태어나 응애응애부터 다시 배우며 다시 살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책을 한 권 한 권 세상에 내놓은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과 가장 닮았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한번 죽는 것과도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입사식을 나혼자 조용히 치르는 새벽이다. 내일부터는 시 생각만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게 실은 제일 좋다. 내 책이 나온 날,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이 (어쨌거나) 전원 복직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최근에 들은 소식 중에 가장 다행한 소식. 다행한 일들이 올해의 마지막까지 계속계속 일어나겠지. 또다른 고달픔과 서글픔에 우리는 또 영혼을 쪼이며 살아가겠지만, 원하는 세상이 하나씩 하나씩 우리 앞에 와야 한다고 적고 싶다. 소원이 하나씩 도착하는 계절이라고 적어두고 싶다. 우리에게 남은 11월과 12월.  





<이 북트레일러는 후배 시인 이상협에게 받은 선물>


선물 받은 <추천사>들
허연 (시인) 詩는 제외된 미학을 가지고 있다. 자본으로부터 제외됐으며, 속도로부터 제외됐고, 환희로부터 제외됐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詩는 여전히 살아남았다. 김소연의 산문은 제외된 시의 미학을 주술처럼 들려준다. 김소연만이 쓸 수 있는 주술이다.

이병률 (시인) 소연 시인의 시를 적어 창문에 붙여두고 오래 본 적이 있다. 같이 살았던 것 같다. 방 안쪽에서도 식물에 물을 주면서도 보았다. 이제는 그녀가 낳은 풍부한 얼굴이며 시대를 마주한다. 그녀의 깊은 표정을 읽으며 그녀의, 사람 멀리에서 하는 사람 여행법을 읽는다. 좋은 사람이며 좋은 친구이며 좋은 시인이 쓴, 물고기의 비늘 같은 문장들 앞에서 나는 더 무엇을 바랄까.

신해욱 (시인) 김소연의 문장은 깊은 겨울 새벽 네 시의 눈처럼 적막하면서도 환하게 내린다. 나는 그의 말들이 살며시 내려 덮은 세상의 사소한 순간들과 조금씩 흔들리는 마음들과 보잘것없는 미물들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불현듯 아, 하고 탄성을 내뱉는다. 소박한 듯 서늘한 듯 돌연한 듯 빛나는 무능함의 아름다움에 문득 아득해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눈을 받아먹으려는 아이처럼 고개를 뒤로 젖혀 아, 하고 다시 한 번 입을 벌린다. 차가운 온기의 문장들을 한 송이씩 혀로 감촉한다. 김소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실은 이 강퍅한 시대를 견디는 영혼의 섭생법이기 때문이다.

유희경 (시인) 모든 아름다운 것엔 균열이 있으니 언제나 김소연은 그늘을 찾아 빛의 자리를 밝혀낼 줄 아는 사람. 그녀의 진솔한 언어. 거기, 고요한 소리 들린다. 정직한 마음의 결이 살아난다. 당신과 내가 서로의 온기를 쥔다. 빛 쏟아져, 그녀의 가늘고 긴 손가락들이 고른 단어들 위로 닿아 몸이 환하다. 그러니 당신, 그녀가 시옷의 형태로 벌려놓은 생의 속살을 훔쳐보라. 그리고 힘껏 사랑하라.

심보선(시인) 얼마 전 김소연 시인과 그네를 탔다. 아니다. 그녀와 그네의 세계를 경험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그녀와 뭔가를 하면 그것은 언제나 하나의 세계가 되곤 했다. 우리의 ‘사귐’은 늘 그러했다. 「사귐」에서 시작된 『시옷의 세계』. 그녀로부터 또 하나의 세계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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